소피아 코폴라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2006)」는 프랑스 혁명 전, 화려한 베르사유 궁정에서 살았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현대적 감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사극의 틀을 벗어나 현대적인 색감과 음악을 활용하여, 그녀의 젊음과 방황을 스타일리시하게 담아냅니다. 특히 영화 속 화려한 의상과 궁정 생활, 달콤한 디저트와 꽃이 가득한 정원은 시각적 즐거움뿐만 아니라 스크린 밖으로 향을 뿜어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를 통해 향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궁전에 처음 갔을 때 느꼈을 화려한 궁정의 향, 쾌락과 탐닉의 달콤한 디저트 향, 그녀에게 자유와 위로의 공간이 되었을 쁘띠 트리아농의 자연의 향. 이러한 향들의 상징성을 통해 영화와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궁정의 화려한 장미 향 – 허영 속에 자신을 감추는 향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시집올 때 그녀는 오스트리아에서 함께 했던 강아지, 그녀가 입었던 오스트리아의 옷, 오스트리아 이름과 모두 작별을 해야 했습니다. 그녀가 살았던 18세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은 사치와 화려함의 절정이었기에, 오스트리아에서 온 그녀의 소박함은 파리의 귀족들에게 촌뜨기라는 놀림거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고작 14살의 어린 소녀를 향한 프랑스 귀족들의 냉대에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 시기 파리의 귀족들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보다는 과한 장식의 의상과 밀가루를 바른 엄청난 머리 장식, 향수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향수는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허영과 위선의 향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는 향이었습니다. 그 시기 특히 인기가 있었던 향은 장미향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또한 장미 베이스의 향수를 즐겨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는 향수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했고, 귀족 여성들은 강렬한 장미 향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향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철저하게 규격화되고 궁정의 엄격한 예법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장미 향은 매우 비싸서 베르사유 궁정에서 권력과 명예를 나타내는 향이었습니다. 귀족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키기 위해 값비싼 향수를 사용했고, 그중에서도 장미 향은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는 요소였습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장미향은 동시에 개인의 진실한 본모습을 감추는 역할도 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궁정 생활 속에서 느낀 압박감과 외로움은 숨막히게 뿌려진 장미 향수의 화려한 향 뒤에 감춰졌습니다. 궁정의 규칙과 관습은 왕비로서의 그녀를 끊임없이 억압했고, 그녀는 장미향에 자신을 감추고 혼미해질정도로 짙은 장미향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달콤한 디저트 향 – 탐닉과 과잉의 향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대를 대표하는 또 다른 향은 바로 디저트에서 비롯된 달콤한 향이었습니다. 그녀의 궁정 생활은 화려한 연회와 끝없는 향락으로 점철되었으며, 특히 그녀가 즐겼다고 전해지는 마카롱, 크림 케이크, 설탕에 절인 과일 등의 디저트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베르사유 궁전의 문화를 상징하는 요소였습니다. 이 모든 것에서 풍기는 바닐라, 장미, 캐러멜, 과일 향은 단순한 달콤함이 아니라 탐닉과 과잉의 시대를 반영하는 향이었습니다.
베르사유 궁정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사치스럽고 방종한 생활을 누리던 공간이었습니다. 귀족들은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끊임없이 연회를 열고, 다양한 형태의 디저트를 탐닉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이러한 문화의 중심에 있었으며, 그녀가 즐겼던 달콤한 디저트들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당시 프랑스 귀족 사회의 퇴폐적 분위기를 상징했습니다. 설탕과 크림이 가득한 디저트의 향기는 처음에는 유혹적이고 달콤하지만, 지나친 달콤함은 사람을 취하게 만들고 두통을 유발하기도 하죠. 이는 그녀의 베르사유의 생활과도 닮아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풍요로워 보이지만, 그 속엔 공허함과 위태로운 삶만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알록달록한 마카롱과 크림 케이크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향도 궁정 내의 정치적 음모와 경제적 위기를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가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지속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 달콤한 향은 점차 부정적인 의미를 띠게 됩니다. 결국 그녀의 디저트 향은 행복하고 달콤한 향이 아니라, 시대적 모순을 상징하는 탐닉의 향이었습니다.
쁘띠 트리아농의 자연의 향 – 자유를 향한 갈망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궁정의 격식과 속박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쁘띠 트리아농입니다. 쁘띠 트리아농(Petit Trianon)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내에 위치한 소규모 별장으로, 형식적인 궁정 생활을 탈피하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려던 공간이었습니다. 원래 루이 15세를 위해 지어졌지만, 그의 사후 루이 16세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선물하였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곳에서 형식적인 궁정 생활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자유를 만끽하고자 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쁘띠 트리아농의 자연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사랑하여, 자신의 전속 조향사인 장 루이 파르종(Jean-Louis Fargeon)에게 이곳의 향을 담은 향수를 제작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파르종은 이러한 요청에 따라 쁘띠 트리아농의 정원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향기를 재현한 향수를 만들었습니다. 이 향수는 라벤더, 레몬, 오렌지 블로섬 등 신선하고 상쾌한 향을 특징으로 하여, 마리 앙투아네트가 쁘띠 트리아농에서 느꼈던 자유와 평온함을 담고자 했습니다. 베르사유의 화려한 장미 향과 달콤한 디저트 향이 인공적인 사치의 상징이었다면, 쁘띠 트리아농에서의 향은 보다 순수하고 자연적인 자유의 향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궁정의 현실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었고, 자신의 본모습과 상관없이 왜곡된 이미지에 갇혀 귀족들과 백성들의 비난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쁘띠 트리아농의 향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며, 그녀가 끝내 도달할 수 없었던 자유를 상징하는 향이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