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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조향사 3인-프란시스 커정, 크리스틴 나이젤, 조 말론

by 엠닷 2025. 4. 1.

흑백요리사 이후 요즘 스타 셰프들의 전성시대입니다.
이제 ‘무슨 음식인가’보다 ‘누가 만들었는가’를 중요해하는 시대가 된 거죠.

향수도 그렇지 않을까요?
“무슨 향이냐”를 넘어 “누가 만들었느냐”를 알고 나면,
같은 향도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이름만으로도 향수 팬들을 설레게 하는 세 명의 조향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한 방울의 향으로 수많은 기억을 만든 천재, 프란시스 커정
  • 에르메스를 감성적으로 재해석한 여류 조향사, 크리스틴 나이젤
  • 레이어링이라는 새로운 향의 문화를 만든 감각의 큐레이터, 조 말론

 

⭐프란시스 커정 (Francis Kurkdjian)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 황금비율을 그리는 천재 조향사
“향수는 보이지 않는 옷이다.”

프란시스 커정 (Francis Kurkdjian)Baccarat Rouge 540
프란시스 커정 (Francis Kurkdjian)

 

프란시스 커정은 196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 피아니스트와 발레리노를 꿈꾸던 그는, 향이라는 또 다른 감각의 예술에 빠져들면서 조향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20세에 베르사유의 ISIPCA 조향학교에 입학한 그는, 놀랍게도 단 26세에 Jean Paul Gaultier의 ‘Le Male’을 탄생시켜 전 세계 향수 시장을 뒤흔듭니다. 이전까지의 남성향은 시원하고 우디함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와는 달리   ‘Le Male’은  부드럽고 관능적인 향이었죠. 장 폴 고티에의 스트라이프 패턴을 담은 향수병도 파격적이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병 이상 판매되며 지금까지도 남성 향수의 클래식으로 손꼽히는이 향수는 커정의 이름을 단번에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Narciso Rodriguez – For Her, Elie Saab – Le Parfum, My Burberry 등 수많은 메가 히트작을 만들며 메이저 브랜드와 활발히 협업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2009년 자신만의 브랜드 Maison Francis Kurkdjian (메종 프란시스 커정)을 론칭하며 본격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브랜드에서 Baccarat의 250주년을 기념해 만든 향수 Baccarat Rouge 540은  ‘붉은 설탕’, ‘사프란 앰버’라는 독특한 향조로 전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달콤하지만 중성적인 매혹적인 향으로 BR540신드롬을 만들었죠. 그의 향수는 니치와 럭셔리 시장에서 모두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합니다.
2021년, 그는 프랑수아 드마쉬(François Demachy)의 뒤를 이어 Dior의 수석 조향사로 임명되며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대중성과 예술성, 트렌드와 정통성을 절묘하게 결합하는 그의 감각은 하우스 브랜드의 미래까지 책임질 인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크리스틴 나이젤 (Christine Nagel)

과학과 감성, 두 세계를 넘나드는 조향의 마술사
“향은 감정을 입히는 것이다. 나는 향으로 감정의 흐름을 말하고 싶다.”

크리스틴 나이젤 (Christine Nagel)Twilly d’Hermès
크리스틴 나이젤 (Christine Nagel)

 

크리스틴 나이젤은 스위스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생화학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향기 성분 분석을 하던 그녀는 향 그 자체에 매료되어, 결국 조향사의 세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비전공자였기에 공식적인 조향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뛰어난 감각과 분석력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고, Givaudan, Firmenich 등 글로벌 향료 회사에서 수많은 향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녀의 손에서 태어난 대표작으로는 Miss Dior Chérie, Dolce & Gabbana – The One, 그리고 프란시스 커정과 함께 작업한 Narciso Rodriguez – For Her EDT가 있습니다.
여성스럽고 섬세하면서도, 그 안에 강렬한 개성과 이야기를 품은 향들이 그녀의 특징입니다.
2014년, 크리스틴 나이젤은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습니다.
바로 Hermès의 수석 조향사로 임명되며, 전임자 장 끌로드 엘레나의 뒤를 잇는 위치에 오른 것이죠. 이는 Hermès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조향사가 그 자리에 오른 것이며, 그녀만의 새로운 색깔로 하우스의 향을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 Twilly d’Hermès는 생강과 튜베로즈, 우디한 베이스가 어우러진 대담한 향으로, Hermès의 트윌리 스카프에서 영감을 받은 향입니다. 향수병에도 작은 트윌리가 묶여 있습니다. 에르메스가 전통적인 우아함을 넘어서 젊고 자유로운 여성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향이죠.
또한 H24는 기존 남성 향수의 틀을 깨는 식물성 플로럴 계열로, ‘젠더리스’와 ‘지속 가능성’을 향으로 구현한 작품입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97%의 자연유래성분을 사용하고  리필 가능한 친환경 향수병을 사용했죠. H24의 "H"는 Hermès, "24"는 에르메스 파리 본사의 주소 24 rue du Faubourg Saint-Honoré에서 따온 것입니다.  크리스틴 나이젤은 이 향에 대해 '강한 남성성이 아니라 섬세한 남성성, 자연과 도시가 만나는 감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조향은 감성적이면서도 실험적입니다.

 

⭐조 말론 (Jo Malone CBE)

영국 감성과 레이어링의 여왕
“향수는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감정이고, 기억이며, 나의 언어다.”

조 말론 (Jo Malone CBE)Jo Loves Pomelo
조 말론 (Jo Malone CBE)

 

조 말론은 조향사로서는 이례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조향 학교 출신도 아니고, 향료 회사에서 경력을 쌓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런던의 한 피부관리실에서 에센셜오일을 다뤘던 그녀는 뛰어난 감각으로 오일을 배합했는데 그녀의 향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집니다.
1994년, Jo Malone London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그녀는 곧 런던 니치 향수계의 여왕으로 떠오릅니다.
조 말론의 향은 ‘간결하지만 기억에 남는 향’,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어링’이라는 새로운 향수 사용 문화를 열었습니다.
Lime Basil & Mandarin, Pomegranate Noir, Wood Sage & Sea Salt 등 그녀의 대표작들은 구조가 단순하고 깔끔하여, 서로 겹쳐 뿌려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Wood Sage & Sea Salt에 Peony & Blush Suede를 겹쳐 뿌리면 '바닷가에 피어난 꽃의 향'이 되는 식이죠. 그녀가 향수를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아닌, '자신만의 조합으로 완성하는 감각의 퍼즐'로 만들어준 셈입니다.
2006년, 그녀는 Jo Malone London 브랜드를 Estée Lauder에 매각했지만, 유방암 투병을 겪고 회복한 뒤 2011년 Jo Loves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돌아왔습니다. Jo Loves에서는 감정, 추억, 이야기에서 출발한 보다 자유롭고 감성적이며 실험인 조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녀는 2018년, 영국 왕실로부터 CBE 훈장(대영제국 훈장 3등급)을 수여받았습니다.
이는 그녀가 단순한 향수 창업자가 아니라, 영국 향 문화를 세계에 알린 인물로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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