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사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감성’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자질입니다. 향은 단순한 향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향은 기억을 불러오고, 감정을 자극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예술, 자연, 철학 등 감성적인 영감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펼치는 세 명의 조향사를 소개합니다.
⭐ 바르나베 피용 (Barnabé Fillion)
예술과 철학, 감각의 실험실
“Aesop – Hwyl”, “Marrakech Intense”, “Virere”, “NONFICTION – For Rest”
바르나베 피용은 조향 이전에 사진가였습니다.
이미지로 세상을 기록하던 그가 향이라는 무형의 언어를 만났을 때, 조향은 곧 감각의 또 다른 예술이 됩니다.
그의 향은 시각예술, 철학, 자연의 풍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대표작 Hwyl은 젖은 이끼와 소나무, 불길이 남긴 그을음 향이 어우러져 마치 안개 낀 숲 속에 들어선 듯한 깊이를 선사합니다.
디지털보다 아날로그, 빠름보다 여백을 선택하는 그의 미학은 향기 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죠.
또 다른 대표작 Virere는 그의 예술 프로젝트인 Arpa Studios에서 출발해 Aesop과의 협업을 통해 정식 향수로 출시된 작품입니다.
라틴어로 ‘푸르게 숨 쉬다’를 뜻하는 이름처럼, 숲의 생명력과 자연의 숨결을 담아낸 듯한 향이며, 현재 Aesop의 Othertopias 시리즈 중 하나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바르나베 피용 특유의 자연 중심 철학과 감각 실험이 Aesop의 미니멀한 미학과 만나 만들어낸 향이죠.
그는 한국 브랜드 논픽션(NONFICTION)과도 협업한 바 있습니다.
바르나베 피용이 조향한 For Rest는 숲에서의 고요한 휴식과 치유의 이미지를 담은 향으로, 한국적 정서와 그의 자연주의적 감성이 조화를 이룬 작품입니다.
이 협업을 통해 그는 글로벌 조향가로서 동시대적인 감성과 지역성까지 아우르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향수를 ‘정체성을 담는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의 향은 늘 어딘가 미완성처럼, 해석의 여지를 남긴 채 공간과 기억 속을 부유합니다.
✨ 조향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기술보다 감각. 계산보다 직관.
세상을 예민하게 바라보고, 그 인상을 향으로 옮겨보세요.
당신의 향은 결국 당신의 감성이 될 테니까요.
⭐ 나탈리 그라시아-세토 (Nathalie Gracia-Cetto)
자연의 리듬과 예술의 감성
“Burberry – Brit”, “Tom Ford – Vanilla Sex”, “Essential Parfums – The Musc”
나탈리 그라시아-세토는 프랑스 향수의 심장부, 그라스(Grasse)에서 태어나 자란 조향사입니다.
처음에는 약리학을 전공해 과학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향이라는 세계에 매료되어 기바우단(Givaudan) 조향 학교로 진로를 바꾸게 됩니다.
그녀는 음악, 문학, 사진 같은 예술 분야에서 영감을 얻어 향을 조합하는데, 그 향은 감각적이면서도 매우 섬세합니다.
나탈리의 조향 스타일은 늘 자연스러움과 세련됨 사이의 이상적인 균형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향은 화려하기보다 차분하고 부드럽게 다가오며, 마치 하나의 감정이나 계절을 닮은 듯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녀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하는 향수”를 만들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대표작 Burberry Brit은 클래식한 플로럴에 프루티와 머스크의 조화를 더해 도회적이고도 따뜻한 이미지를 선사하며,
2004년 FiFi 어워드에서 ‘럭스’ 부문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Tom Ford와의 협업작인 Vanilla Sex로 다시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향수는 바닐라와 플로럴이 깊고 관능적으로 어우러진 향으로,
2024년 프래그런스 파운데이션 어워드에서 ‘올해의 유니버설 럭셔리 향수’로 선정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녀는 현재도 Essential Parfums, Fragrance du Bois 등 다양한 니치 브랜드와 협업하며
자연주의 조향, 지속 가능한 향료 활용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활동 중입니다.
✨ 조향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향을 만들기 위해 꼭 화려한 원료가 필요한 건 아닙니다.
자연의 리듬을 느끼고, 당신만의 섬세한 감각을 믿어보세요.
향은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이니까요.
⭐ 다니엘라 앙드리에 (Daniela Andrier)
지성으로 완성한 시적인 조향
“L'Homme Prada”, “Prada La Femme”, “Miu Miu – L’Eau Rosée”, “Bottega Veneta – Knot”
다니엘라 앙드리에는 조향을 시(詩)처럼 다룹니다.
향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고, 그것은 종종 지적인 울림을 동반합니다.
그녀는 독일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건너가 소르본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어떻게 감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그녀는, 철학의 언어 대신 향이라는 감각의 언어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후 조향사로서의 여정을 위해 ISIPCA에 입학하고, Givaudan에서 경력을 쌓으며 자신의 조향 세계를 넓혀갔습니다.
다니엘라 앙드리에는 특히 Prada와의 장기적이고 깊은 협업으로 유명합니다.
L’Homme Prada와 La Femme Prada는 그녀의 조향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두 향수 모두 남성과 여성의 전형적인 성 역할을 해체하고, 이성성과 감성, 강인함과 부드러움 사이의 조화를 탐구합니다.
아이리스, 앰버, 네롤리, 파출리 같은 클래식한 향료들이 모던하게 재구성되어 지적이고 세련된 무드를 완성합니다.
Miu Miu – L’Eau Rosée는 순수하면서도 독립적인 여성성을 향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머스크와 프리지어, 베르가못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가볍지만 개성 있는 잔향을 남깁니다.
Bottega Veneta – Knot은 세련된 시트러스와 오렌지 블로섬, 라벤더, 머스크가 겹겹이 쌓이며
절제된 우아함과 여운을 남기는 향으로, 브랜드의 럭셔리 감성과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그녀의 조향 스타일은 대체로 은은하지만 깊이 있는 플로럴, 정제된 구조감, 클래식한 향료의 현대적 해석으로 정의됩니다.
The Perfume Society는 그녀를 “프로이트와 플라톤에 매료되었지만, 조향을 통해 더욱 섬세한 이야기를 전하게 된 인물”로 소개합니다. 그녀는 향수를 “정제된 본능”이라 부릅니다.
그녀의 향에서는 감정과 이성이, 즉흥성과 구조가 정교하게 균형을 이룹니다.
✨ 조향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향의 역사와 철학, 클래식한 향료를 공부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새롭게 써내려 가보세요.
좋은 향은 결국 생각하는 사람의 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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